춘하추동-죽음으로 가는 시나리오

춘하추동-죽음으로 가는 시나리오

석두 5 4,060
기차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를 부른자는 어제 같이 송정 넘어 온 친구들 중 삼용이었다. 초량 같은 골목에 살고 있다. 어제 너무 재미있게 놀다가 기차시간 놓쳤단다. 그래서 올나이트했으니 결국 우린 모두 1박2일의 짧은 바캉스였다.
부산진역행 기차안에서 나는 아까 염이의 떠나는 모습에서 나를 강렬하게 때린 정체가 무언가 골돌히 생각에 잠긴다. 딱 잡히는 것은 없지만 굉장히 불길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집으로 들어와서 방바닥에 들렁 누워 온갖 어제밤 염이와의 한 밤을 되새겨보는 등 잡념을 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나보다. 자염이가 쓰윽 나를 향해 오는데 맙소사! 그 모습은 주검의 환영이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심장이 세게 뛴다. 이마에 진땀이 난다.
그건 아니야, 아니야. 알려야 돼. 골목을 뛰어내려가 자염이네 집 근처를 돌아보는데 큰길쪽에서 염이의 동생이 "언니는요?" 하고 물으며 내게 온다. 지난 밤의 외박을 했는데 같이 있을것이려니 여긴 내가 지 언니 없이 혼자 제 집 근처에 있는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내가 막 언니는 울산이모절에 라고 말하려는데, 내 뒷쪽에서 헛기침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염이 동생이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내 뒤의 남자가 염이의 아바지였다.
나도 그 자리를 떠나 음악실로 향한다. 음악실안의 내 친구들 분위기가 숭숭하다. 내가 그들 옆에 앉으니
자살주특기가 청산염 묵고 죽었단다. 누님 집에 들려 물 한바가지 마시고 나 간다!하고 20미터쯤 가서 죽었단다. 그 말 듣고 내가 내 뱉은 말은 이러했다.
"일주일 안에 우린 또 다른 자살을 볼거다"
나는 뭘 알고 있었든건가? 아님 그 애가 죽기를 바래고 있었는가.
술에 잔뜩 취해서 그날 밤 잠을 자는 데 자꾸만 낮에 본  환영이 떠나지 않는다. 불길하다. 뭔가가 일어날 것 같다. 미치겠다.
마침 그날 밤 늦게 염이의 여고동기생 친구가 음악실에 나를 찾아왔다. 염이가 이틀동안 집에 오지 않는다고 염이 집에서 걱정하며 알아봐 달라고 해서 왔단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내가 울산 이모절 이야기를 하자 그녀도 아! 그 암자. 하고 안심하더니 자염이 집에 말 전해주겠다고 갔다.
이제 안심이다.
딸이 어디 있는 가 알면  염이네 집에서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거다. 또 귀가ㅏ더라도 추궁 따윈 없을거다. 나는 학사주점에 가서 막걸리 한되를 깍두기김치 안주로 안도의 술을 마셨다.
잘 될 것이다. 잘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 어디에 일말의 불안감은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다.
다음 날 밤. 염이의 친구가 또 왔다. 그리고 내 곁에 여전히 염이가 없는 걸 보면서 걱정하는 얼굴이다.
어제 말 전했는가?
물었드니 못 갔단다. 음악실 나가자 말자 요즘 사이가 비틀어진 남자한테 잡혀간 바람에 말을 못 전했단다. 그리고 이 아가씨는 가버렸다.
휑하니 머리속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내일은 염이를 만나는 날인데 왜이리 현기증이 나나?
내 주변에 백기사 우산아래 모이는 소녀들이 몇 명 있다. 그즈음은 염이 때문에 자주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 날 한아가씨가 염이 때문에 불안한 내가 맘에 걸렸는지 위로한다며 막걸리 한잔 대접하겠단다. 둘이 학사주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고 음악실로 돌아가 그날의 마지막 곡을 들으며 그 소녀와 같이 나왔다. 그 소녀는 영주동 어디쯤 살았었다.
둘은 부산호텔 앞을 지나 대청동 큰 길을 건너 동광동 윗길 입구에서 내가 방향을 현대극장(지금 제일은행)쪽으로 틀었다. 딴에는 염이와 단 둘이 걷던 길을 다른 소녀와 걷는 게 좀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산역전 큰 대로를 따라 가서 영주동 부산터널 큰 도로 건너 터널 쪽으로 더 올라가서 헤어졌다.
거기서 줄곳 나가면 초량국민학교가 나오고 그 사이 골목으로 올라가면 내가 사는 단칸방 골목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평소 염이와 걷던 길에서 아예 벗어 난 길로 간 것이다.
이제 날이 새고 점심 무렵이면 염이를 볼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도 잠자리가 어수선했다.
오전 11시쯤에 골목길을 나와 초량시장을 빠져서 중앙극장 앞 광장에 섰다. 자염이네 집 들어가는 골목은 인적이 없다. 그 골목은 이상스럽게 조용한 것은 주택가이면서 좀 부유층이 사는 곳이라서 그럴까.
자염이네 집 건물 구조얘기가 빠졌네. 전면 대로변은 다방이 있고 그 뒤가 살림짐인데 아마 2~3층이였을게다. 물론 지금도 그 건물 옛 그대로 있는걸로 알고 있다.
큰 길을 건너 차도와 인도 분리석에 앉아 자염이네 집을 살핀다. 혹 염이가 날 만나러 나오면 놀래줄것이다. 그런데 한복차림인 자염이 모친이 큰길로 나와서 이리 저리 뭔가를 지시하고 동생이 이리 저리 뛰다가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 쪽으로 갔다.
낟 거기서 어서령거리면 음악실로 갔다. 오전의 음악실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다. 분위기 좀 띄운다고 색색의 칼라 셀로판  투명지로 형광등을 감아 놓아 분위기 따라 그 색상이 묘하게 기분을 탄다.
시간이 가는데 염이는 오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점심시간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점심 사 먹을 여유는 처음부터 없다. 음악실 출입권인 차 한잔 티켓 값이 빠듯하던 때이다.
누군가 내 어께를 툭 친다.
'너, 이리와봐라'
돌아보니 염이를 부탁했던 거인 서창주이다. 그날 날 뺨 때린 이후 처음 보는 놈이 나를 용두산 공원으로 아무런 말도 없이 델고 갔다. 그리고 묻는다.
"간섭하지 말라 했지. 간섭 안했다. 근데 늬는 자염이 한테 얼마나 잘 해 주었노?"
문득 내가 대답할 게 없다는걸 거기서 알았다. .
 내가 뭘 잘해주었는가.
최선을 다 해서 챙겨 주었는가?
사랑해 주었는가?
대답할 거는 한개뿐이다.
거의 매일을 곁에는 있어 주었노라!
거의 매일을 곁에 있어주며 그 애 심장 팍팍 송곳으로 찍지는 안했냐?
모른다. 나는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애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냐. 이 것 한번 볼래
그가 내민 것은 조간신문 대한일보란거다.
주는 대로 펼쳐보는 신문 그 빡빡한 활자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세 글자
최자염(가명 19세)
동광동 신신여인숙에서 실연인듯 마이날 먹고 자살하다.
페닉상태에 서창주의 말이 아직도 남아있다.
널 죽일려 했는데, 둘이 같이 저승에서 만날까봐 못 죽이겠다. 

Comments

명랑!
헉....emoticon_016....예감이.... 
고개기
최선을 다해 챙겨 주었는가.. 사랑해 주었는가... 
★쑤바™★
결국....그 불안감의 정체는....
죽음의 그림자 였군요..... 
찰리신^.^~
자살은 어떤경우에도 안되는디... 
mamelda
헉.... 어쩐댜~ 열아홉인뎅 ㅡㅡ
허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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